"혼이 담긴 짜장면 한번 드셔보실래요"

[차(車)로 가는 맛집]<1>신성각

최석환 기자 l 2017.03.25 07:09

편집자주 "음식점 중에서 맛있는 곳이란 어딘가 무서운 구석이랄까. 보이지 않는 부분, 수수께끼 같은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다니구치 지로 '고독한 미식가' 중) 맛있는 음식은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요리해준 사람의 손을 타고 느껴지는 진심에서 위로를 받는다. 차를 타고 부지런히 찾아다닌 미식의 여정을 소개해본다.

마음만 먹고 있다 충동적으로 간 집이 서울 마포에 있는 36년 전통의 수타짜장면집인 신성각이었다. 일단 용산전자상가 인근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평소에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그랬는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낯설었다. 도로를 달리다 언덕 쪽으로 방향을 트니 구불구불 이어진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용산공원과 백범기념관을 지나 15분여 정도를 차로 올라가니 길가에 '신성각'이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단 한그릇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고 싶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만나게 되는 주인장 이문길씨의 대문 글이다. 숭고하면서도 비장함마저 전해지는 음식을 대하는 주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오니 한참을 들어가지 못하고 문앞을 서성거렸다.

감동에 젖은 감성을 추스르고 가게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소박한 분위기에 또 한번 행복감이 밀려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옛날식'이란 게 이런 거지. 속으로만 감탄하며 빈자리에 앉았다. 테이블도 몇개 없었지만 메뉴도 단출했다. 그 흔한 짬뽕도 없이 짜장과 간짜장, 그리고 곱빼기. 요리는 탕수육과 만두가 다였다.
신성각의 간짜장/사진=최석환 기자


뭐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간짜장을 시켰다. 너무도 가깝게 주인장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주문과 동시에 한땀한땀 뽑아내는 면을 보니 문앞에 걸어둔 각오가 허세가 아님이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후 기다리던 짜장면이 식탁 위에 올려졌다. 혼이 담긴 짜장면이라고 생각하니 냄새를 타고 퍼지는 '기(氣)'가 주변을 에워쌌다. 그렇게 잠시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적막한 시간이 찾아왔다.

"그 마력은 뭐니 뭐니 해도 냄새가 퍼뜨리는 힘으로부터 나온다. 그 냄새에 슬쩍 감염되면 지위고 체통이고 다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도 국가도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 냄새 앞에서는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다."

안도현은 '짜장면'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신성각의 짜장면은 그 이상이다. 진한 향은 아니지만 은은하고 깊은 향이기 때문이다. 마치 신선이 된 것처럼 짜장을 비벼서 입 안에 넣으면 놀라움이 입안 가득 찼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슴슴하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 색다른 짜장의 세계로 인도했다. 깔끔하면서도 다양한 야채와 어우러진 고기의 향연이 즐거움을 선사했다. 물과 밀가루만으로 반죽을 해 힘이 없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주인장의 기우와 달리 크기가 일정치 않은 '면'도 쫄깃하면서도 담백했다.

천천히 오래 있고 싶었지만 대기하는 손님이 많아 눈치가 보였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서니 상쾌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면서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졌다.

차로 올라오다보니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근처의 '효창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은 덤이었다. 자연과 함께 사색하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장소였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한 고은 선생의 절창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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